영화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를 주제로 한 역사 영화로, 세종대왕과 신미 스님의 협업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한 창작이기에 역사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감독의 연출 방식, 스토리 전개, 그리고 흥행 성적 모두에서 주목받은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감독의 연출 철학, 영화의 서사 구조, 그리고 흥행 성과와 논란까지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나랏말싸미 영화 감독의 연출 시선 – 조철현 감독의 첫 장편
<나랏말싸미>의 감독 조철현은 언론인 출신으로, 오랜 기간 영화계에서 작가와 프로듀서로 활동하다가 이 작품을 통해 감독 데뷔를 했습니다. 그는 <사도>, <관상>의 각본 작업에 참여하며 역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쌓았으며, <나랏말싸미>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처음으로 시각화했습니다. 특히 조 감독은 "인간의 생각이 문자를 만들고, 문자가 다시 인간을 만든다"는 언어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했다고 밝혔습니다.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서, 문자 창제라는 문화적 진보를 철학적 메시지로 끌어올리려 한 것이 특징입니다. 조 감독은 세종대왕을 절대적인 영웅이 아니라, 고뇌와 인간적 결함을 지닌 인간으로 묘사하며, 그 곁에서 함께 문자를 만들어가는 신미 스님을 대등하게 그려냈습니다. 이러한 연출은 전통적인 역사극의 권위적 시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물 구도를 제시하는 실험적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도가 관객에게 낯설게 다가온 점은 분명합니다. 실제로 당시 조계종은 "신미 스님의 역할을 과장했고, 영화적 상상이 지나쳤다"며 반발했으며, 일부 관객은 세종의 업적이 희석되었다는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또한, 영화적 장면 구성 역시 상당히 상징적이고 추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문자 창제 장면에서 물 위에 떠 있는 자음과 모음의 구조를 시각화하거나, 바람 소리를 글자로 표현하는 장면 등은 조 감독 특유의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이는 예술적 성취로 볼 수 있으나, 전통 서사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난해하고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조철현 감독은 인터뷰에서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낯설게 보여주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며 연출 철학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의 각 장면은 감정의 흐름보다 메시지와 상징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일부 장면은 다큐멘터리적 접근과도 유사한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인물 간의 대사도 감정적인 교류보다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돼, 대중영화보다는 예술영화에 가까운 뉘앙스를 풍깁니다. 결과적으로 조철현 감독은 역사와 철학, 종교와 문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출적 실험을 감행했으며, 이 작품을 통해 기존 상업 역사극의 문법을 완전히 벗어난 독창적 시도를 선보였습니다. 그 결과물은 비록 흥행에서는 실패했지만, 한국 역사영화의 표현 영역을 넓힌 작품으로 기록될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갖습니다.
스토리 구조 – 신미 스님과 세종의 협업
영화 <나랏말싸미>는 전통적인 역사극과 차별되는 독창적인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세종대왕이 한글을 독자적으로 창제한 것이 아니라, 불교 승려인 신미 스님의 도움을 받았다는 설정은 기존 역사 인식에 도전하는 파격적 요소였습니다. 이 서사적 틀은 일부 불교 문헌에 근거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감독은 이러한 구성을 통해 문자 창제의 종교적·철학적 배경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스토리는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한 글자를 만들고자 결심하면서 시작됩니다. 그 과정에서 유학자들의 반대, 정치적 위협, 건강 악화 등 여러 장애물을 마주하게 되며, 기존 집현전의 힘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때 비밀리에 신미 스님을 궁으로 불러들이며, 이야기는 본격적인 공동 작업 구조로 전환됩니다. 영화는 이 둘의 정신적 교류, 사상적 충돌, 그리고 점차 깊어지는 신뢰를 통해 문자 창제라는 대서사를 전개합니다. 이 서사는 세종대왕의 '성군' 이미지에 인간적인 면을 부여하고, 신미 스님을 단순 조력자가 아닌 동등한 창조 주체로 묘사함으로써 상호 협력의 상징으로 확장됩니다. 이는 현대적 관점에서 집단 창작의 의미와도 맞닿아 있으며, 관객에게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역사 왜곡 논란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신미 스님의 실존과 역할에 대한 학계 의견이 엇갈리며, 영화의 허구적 설정이 지나치다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교과서 속 역사와 다르다는 이유로 학부모 단체나 교육계 일부에서 반발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서사는 시적이고 감성적인 흐름을 통해 관객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특히 자모음이 조합되는 구조를 시각화한 장면은 한글의 과학성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시도로 평가받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세종과 신미가 완성된 문자를 놓고 ‘이것은 모든 백성을 위한 소리다’라고 대사로 강조하는 장면은 영화 전체의 철학을 압축해 전달합니다. 또한, 영화는 소리와 이미지의 조화를 통해 ‘문자’라는 보이지 않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려 합니다. 이는 영상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으로, 스토리텔링보다는 메타포 중심의 내러티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영화는 단순한 줄거리 전달보다 ‘느낌’을 남기는데 초점을 둡니다. 이 같은 서사 구조는 대중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어렵고 느리게 느껴질 수 있지만, 문자의 철학적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흥행 성적 – 기대와 현실의 괴리
<나랏말싸미>는 2019년 7월 24일 개봉 이후 전국 2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면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제작비가 약 110억 원에 달했으며, 손익분기점은 350만 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영화계는 세종대왕, 한글, 송강호 출연 등 세 가지 요소로 인해 상당한 흥행을 예상했으나, 다양한 외부 변수와 내부 이슈로 인해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변수는 주연 배우 변경 이슈였습니다. 초기에 세종대왕 역으로 캐스팅되었던 송강호가 촬영 직전 하차하고, 박해일이 대체 투입되면서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이 일부 감소했습니다. 박해일의 연기는 섬세하고 절제되었지만, 송강호 특유의 카리스마와 대중성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또한 영화 제작 중에 발생한 불교계의 항의, 역사 왜곡 논란, 신미 스님의 묘소 훼손 문제 등 여러 논쟁이 겹치며 부정적 인식이 형성되었습니다. 개봉 시기도 <라이온 킹>과 <엑시트>라는 대형 상업 영화들과 겹치며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가족 단위 관객과 젊은 층은 대중적 오락성을 선호하며 다른 영화를 선택했고, <나랏말싸미>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주제와 논란으로 인해 중장년층에서도 명확한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특히 SNS와 커뮤니티 중심의 부정적 입소문은 개봉 초기 흥행세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흥행 분석을 종합하면, 첫째, 스토리와 연출이 대중성과 거리가 있었고, 둘째, 외부 논란이 영화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셋째, 마케팅과 홍보 전략에서도 관객의 기대와 맞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의미 있는 시도를 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흥행 실패에도 불구하고 역사극의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 영화가 한국 영화계에 던진 질문에 주목합니다. 역사 영화는 어디까지 창작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가? 실존 인물을 재해석할 때 창작자가 지켜야 할 선은 어디인가? <나랏말싸미>는 이러한 질문을 수면 위로 올린 최초의 영화 중 하나입니다. 이처럼 흥행과는 별개로 논의의 장을 넓힌 측면에서 의미가 깊습니다.